20대 여성에게 폴드5를 권매하겠습니다 만일 내가 이번 삼성의 새로운 폴더블 시리즈 출시를 앞두고 위와 같은 말을 임원에게 한다면, 정신이 나갔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계적으로) 20대 여성은 갤럭시 Z폴드 시리즈를 구매하지 않는다. 보안이라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20대의 65%가 아이폰을 쓴다. 심지어 20대 여성은 그 비중이 71%에 달한다.
내부적인 분석 결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CRM 매니저인 나는 연령과 성별을 나눠 맞춤형 메시지를 보냄에 있어 20대 여성에게는 폴드5의 구매 혜택을 절대 어필하지 않는다. 보내도 플립5의 구매 혜택을 어필하거나, 심지어는 보내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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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을 할 때는 편견을 가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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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은 아이폰을 쓴다." "50대 남성은 갤럭시 Z폴드를 플립보다 선호한다." "T우주를 홍보할 때 여성에게는 꽃, 카페 등의 부가 상품 서비스를 어필해라" 사회학과 출신으로서 부끄럽지만 내가 직접 부사수에게 했던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언행은 모두 데이터에 기반해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데이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꽃과 카페 등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의사 결정을 했던 것이다.
CRM 매니저로서 고객별로 맞춤형 메시지를 보내야 하지만, 예산과 리소스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이렇게 편견이 가득하고 '대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판단을 하게 된다. 사용자의 행동에 기반해 맞춤형 광고와 콘텐츠를 제안해야 하는 마케터들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즉, 마케터로서 효율적인 판단을 하려 할수록 스테레오 타입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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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게 하면 먹고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인생이 허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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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케터로서 '효율적인 판단'만을 하고 살아가던 중, 지난 주 믹스의 초청을 받아 금요일 우아한형제들 한명수 CCO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다양한 인사이트를 공유해 주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다음과 같다.
마케팅에는 검증된 공식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공식을 따른다.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정해둔 틀 안에서 자기다움을 찾지 못하면 결국 인생이 허망해 진다.
맞다. 지금까지 마케터로서 나는 어떻게 하면 더 뻔한 선택을 할 지를 고민해 왔다. 고객들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하며 일관된 행동양식이 있는지를 파악했고, 그 파악한 행동양식(20대 여성은 아이폰을 구매한다)을 진리라고 생각하며 전체 마케팅 전략에 녹여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하는 마케팅 전략과 콘텐츠는 뻔하기 일수였고, 그 뻔함은 당연히 효과가 있었지만 매번 반복되고 변함없는 업무에 현타(?)를 느끼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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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면뛰기 동작은 자연스러운 동작이며,
단지 제가 처음 발견했을 뿐입니다.
- 딕 포스베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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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처음으로 '배면뛰기' 동작을 선보인 딕 포스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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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내가 내린 판단은 '효율적인 판단'인걸까? 한명수 CCO님께서 인용하신 딕 포스베리의 사례가 인상적이어서 소개를 해보려 한다.
1968년 딕 포스베리가 멕시코 올림픽에서 선보인 배면뛰기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1876년 미국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종목으로 선정된 이후, 높이 뛰기는 '가위뛰기와 같이' 정면으로 뛰는 방법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 역시 더 높이 뛰고 싶었지만, 기존의 뛰는 방법이 효율적이고 안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 우스꽝스러웠을 수도 있는 배면뛰기 방법은 곧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더 높이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0여년의 시간 동안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가위뛰기'는 딕 포스베리의 배면뛰기 한 방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렇기에 내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던 팩트(?)가 과연 팩트일까, 딕 포스베리의 배면뛰기처럼 팩트 이면의 더욱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은 없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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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갑작스럽게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고 할 때, 주변 동료 뿐만 아니라 윗 사람 역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창의적이라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선택을 믿고 새로운 시도를 지지해 줄 유연한 조직 문화 역시 필요하다. 딕 포스베리가 배면뛰기를 올림픽에서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그가 새로운 방법으로 뛸 때 그를 믿고 지지해 준 코치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고민에 빠진다. 당장의 스테레오 타입에 기반한 효율적인 판단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실패할 확률이 더 크지만 창의적인 시도를 할 것인지.
흠, 마케터는 스테레오 타입에 의존해야 하는 직업인걸까? 아니면 작은 고객의 니즈라도 충족시키며 소비자와 브랜드를 연결하는 직업인걸까?
아... 마케팅...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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